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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선생은... 온화하고 순수하며 화평하고 즐거운 듯 미소 띤 얼굴은 친근하여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고, 곧고 엄정한 말씨는 엄격하면서도 말은 기백이 놓고 간결하여 가을 햇살 같았다. -제자 윤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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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 삶과 사상을 따라]1.프롤로그_연재를 시작하며 - 경기일보20130114
성호기념관 201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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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 삶과 사상을 따라]1.프롤로그_연재를 시작하며

 

조선 백성의 삶을 위한 실학(實學)을 열다

정은란  |  webmaster@kyeonggi.com                             승인 2013.01.14


 


 


 


 













 
성호 이익 영정








  
성호사설

 


한 인물로 조선의 역사는 새로 시작되었다. 성호 이익이 이 세상에 나왔기에 조선의 역사는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 비실용의 역사에서 실용의 역사, 소수 양반중심의 역사에서 민초들의 역사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개혁군주 정조와 다산 정약용 등 수많은 인물이 그의 저서를 읽고 사상을 배우고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그래서 그는 조선후기 새로운 역사 서막의 주인공이었다.

성호의 학문을 굳이 실학이라고 일컫는다면 오늘날의조선후기 사회개혁사상이라는 고유명사화 된 개념은 거부하고 싶다. 오늘날의 실학의 개념은 일제 강점기 때에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가능하게 하였다는 식민사관에 대한 반향으로서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재규정된 용어라 볼 수 있다
.

다시 말해 식민사관을 부정하는 근거로서 조선 후기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의 사회 개혁적 학문적 성향만을 높이 평가하여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으로 정립된 것이다
.

덕분에 성호는 실학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하여 근대화론과 연계한 실학자 성호는 아무리 강조해봐야 큰 감동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실학자라는 명성이 성호의 참모습을 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성호의 참모습이란 무엇일까
?
우선 성호 학문의 성과이다. 오늘날
화폐인물인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조선 초기에 어렵게만 느껴졌던 조선 성리학의 학문적 대중화에 이바지하였다면 성호는 성리학 연구를 절정에 다다르게 한 장본인으로 평가할 수 있다.

대체로 새로운 학문이 유입되어 숙성과정을 거쳐 농익을 무렵 그 학문에 따른 성과물이 나오는 법인데 비록 성호의
저작물은 아니지만, 성호의 지도로 이루어진 동사강목이란 역사책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동사강목은 주자의 강목체 역사서술 방식을 따른 역사책 중 가장 뛰어난 사서로 평가받고 있다.

성호 대에 이르러 성리학 연구가 정점에 다다랐다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성리학 외의 학문에 대한 관심을 유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성호와 그의 제자들은 서학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새로운 지식은 이서(異書)에서 얻는다는 성호의 싯귀는이서즉 서양의 신문물에 대한 성호의 태도가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보여주며 현재 천주교의 발상지인 천진암 성지에 모셔져 있는 최초 천주교인 대부분이 성호의 제자라는 사실 또한 주목할 만하다
.

물론 성호의 제자들 모두가 서학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다. 일부 제자들은 서학에 경도되는 동료에게 회유와 경계의 글로써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한 학자의 제자들 성향이 이렇게 극명하게 둘로 나뉘어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성호가 추구하는 학문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성호의 학문적 성과는 주자 성리학의 완성이요, 신학문 즉 서학에 의한 사회 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그리고 이러한 학문적 성과는 그의 합리주의적 사고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으며, 또한 백성에 대한 한없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성호기념관 전경








  
사농합일


성호기념관에서 10년간을 성호 이익에 대한 연구에 매달리면서 체득한 성호의 참모습은 이미 언급한 성호의 학문사적 위치가 첫 번째요. 둘째로는 그의 합리주의 사고의 토대가 되었던 휴머니즘이다. 성호의 개혁사상 그 자체가 곤궁한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함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성호의 일상생활 속의 모습이다.

성호가 산행을 좋아하는 노비에게 여가를 주어 산행케 하고, 노비의 기일에 맞추어 손수 묘지를 찾아 제문을 지어 평소 자신을 위해 수고한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 것은 당시 노비를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가히 파격적이다. 혹자는 매매를 금지하면서 노비제를 점차 없애고자 하였던 성호의 대책을
보수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곧바로 노비제 혁파를 주장하지 않았다 해서 노비제를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나치게 오늘날의 잣대로 성호를 평가하는 과오를 경계할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것은 성호의 여성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의 정절을 중시하는 성호 이익의 관점에 앞서 우리는 비록 출가외인이었지만 홀로된 누이를 거두고, 자신 유모의 묘지를 마련하고 제사를 지내주었으며 시집가는 딸에 대한 부정을 시로써 나타내는 인간애를 보여준 그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해 저무는 저녁이면 동네 꼬마들을 모아 글을 읽고
아이들과 장난삼아 시를 짓는 성호 선생의 모습을 상상하면 세 아이의 엄마로서 눈물겨운 감동마저 느껴진다.

끝으로 성호의 또 다른 참모습은 바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이다. 선비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사농합일의 주장은 널리 알려진 성호의 사상이다. 성호는 손수 텃밭을 가꾸고, 꿩과 닭을 치고 벌을 키우면서 종일토록 농부들과 농사일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농사를 지어본 자를 관리로 임용할 것을 주장했다. 성호의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는 단순히 노동의 실천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식의 확산과 공유에 대한 실천, 그것은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임에도 선뜻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체를 매우 정확하게 구사하거나 초서체,
필기체이지만 명확하게 씀으로써 누구나 자신의 글을 읽기 쉽게 작성하는 성호의 태도는 가히 실학적이다.

더욱이 다산 정약용의목민심서-목민관으로서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글등의 위엄 있는 책의 제목과 대조적으로 성호는성호사설-성호의 자질구레한 이야기’, ‘곽우록-콩잎이나 먹는 백성(성호 자신을 칭함)의 근심등으로 책의 제목을 정함으로써 겸손하기까지 하다. 또한, 순암 안정복에게 동사강목의 집필을 권유하고 집필과정에서 상당한 부분을 개입하였으면서도 오로지 제자의 이름으로 책을 내게 했다는 사실은 스승으로서 겸양을 여실히 보여준다.

성호의 말년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세상을 바꿀 지식을 가졌지만, 정치적 힘이 없었던 좌절감이 가장 성호를 괴롭혔겠지만 계속된
자연재해와 전염병 탓에 식솔은 물론 일가친척까지 돌보느라 가산을 모두 탕진하여 송곳 꽂을 땅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성호가 평소 검소함을 강조한 것을 성호가 겪었던 말년의 가난을 원인으로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일찍이 성호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과 노비 덕분에 풍요롭게 살 수 있음을 밝혔다.

앞마을 밥 짓는 연기가 끊어진 것을 보면서 오히려 콩죽을 먹는 것조차 과분하게 여기는 성호의 태도는 탐욕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성호의 학문적 성과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행보, 그리고 한없는 인간애, 이러한 면모는 세상을 바꾸려는 혁신으로 나타난다. 그 혁신이라는 것은 토지
제도를 개혁하고 신분제를 바꿔나가는 사회개혁의 주장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실제 성리학적 질서를 뒤흔드는 예제의 개혁과 실천으로 이어졌다.

성호는 일반 서민들까지 뿌리 깊게 퍼진 주자가례의 원칙론을 극복하고 모든 예식을 서민들의 생활수준에 맞추어 간소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진정 백성을 위한 개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성리학적 질서를 절대규범으로 바라보지 않은 것이요, 새로운 시대로 한걸음 내디딘 것이었다. 구한말의 수당 이남규는 이러한 성호의 예제에 대한 파격적인 행보는 성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2013
년은 백성을 위한 실학의 태동자 성호 이익
선생님의 서거 250주년이다. 오늘 우리 사회는 남북분단의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대통합과 사회발전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야 한다.

그 사상이 바로 성호 이익 선생님의 사상일 것이다. 경기일보의 혜안과
경기도와 안산시의 후원으로 40여 회의 연재를 통해 성호 이익 선생님의 개혁과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오늘날 경기도와 한국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기대한다.

이 연재에 참여하는 홍재연구소의 연구원들과 각계
전문가들을 대표하여 미력한 제가 프롤로그를 쓰게 된 것을 참으로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분들과 좋은 연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기대하여도 좋을 것이다. 성호 선생님을 통해 우리 사회가 분명히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은란 안산시 성호기념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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