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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선생은... 온화하고 순수하며 화평하고 즐거운 듯 미소 띤 얼굴은 친근하여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고, 곧고 엄정한 말씨는 엄격하면서도 말은 기백이 놓고 간결하여 가을 햇살 같았다. -제자 윤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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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옥동금(玉洞琴) 중요민속문화재 지정-20141020 국제뉴스
성호기념관 2015/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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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옥동금(玉洞琴)' 중요민속문화재 지정
김석태 기자  |  suktae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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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20  12: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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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민속문화재 제283호 '옥동금'. 사진제공=문화재청





(대전=국제뉴스) 김석태 기자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경기 안산시 성호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옥동금(玉洞琴)’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한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83호 '옥동금'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년)의 셋째 형인 옥동 이서(玉洞 李漵, 1662~1723년)가 만들어 연주하던 거문고다.



이 거문고는 제작 시기와 사용자가 분명해 18세기 초 우리 악기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유물이다.



옥동금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 고종(1852~1919년) 때 홍문관교리와 영흥부사, 우승지 등을 지낸 수당 이남규(修堂 李南珪, 1855~1907년)의 문집인 ‘수당집(修堂集)’ 권1 ‘군자금가(君子琴歌)’에 전한다.



수당집에 따르면 옥동금은 옥동 이서가 금강산 만폭동의 벼락 맞은 오동나무를 얻게 돼 이로 거문고를 만들고 뒤판에 시를 지어 새겼으며 당시에는 이를 '군자금(君子琴)'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전해지는 옥동금의 뒤판에는 소장자였던 옥동 이서의 친필을 집자(集字)한 '玉洞'이라는 글자와 효언 윤두서(孝彦 尹斗緖, 1668~1715년)의 아들인 낙서 윤덕희(駱西 尹德熙, 1685~1776년)가 쓴 시가 새겨져 있어 옛 거문고의 품격과 예술적 조형미를 한껏 높여주고 있다.



또한 옥동금의 크기와 형태가 오늘날의 거문고와 다소 다르기 때문에 악기와 옛 음악을 복원하는 모델로서도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옥동금은 여주이씨(驪州李氏) 문중에 전해지다가 지난 2011년 11월12일 후손 이효성(李曉成) 씨가 안산시에 기증해 안산시 성호기념관에 소장돼 있다.



문화재청은 소장자인 안산시와 협력해 이번에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는 옥동금을 더욱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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