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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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선생은... 온화하고 순수하며 화평하고 즐거운 듯 미소 띤 얼굴은 친근하여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고, 곧고 엄정한 말씨는 엄격하면서도 말은 기백이 놓고 간결하여 가을 햇살 같았다. -제자 윤동규

성호이익

학문과 사상

첫째, 경세치용의 경학을 수립하다

실학은 조선후기에 대두된 일련의 현실 개혁적 사상 체계를 말하는데, 성호 이익은 실학을 이끈 가장 중요한 학자 중 한사람이었다.

성호는 세계를 대할 때 관념적이거나 주관적으로 보지 않고, 객관적이며 경험론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우주(宇宙)와 천지(天地)는 어떻게 다르며, 우주와 기(氣)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의 문제에 의문을 가지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물질 존재의 객관적 형식으로써의 전체 ‘우주’ 즉 공간·시간은 무한하다는 과학적 인식에 도달할수 있었다.

서양의 자연과학적 지식에 영향 받은 성호는 이(理)를 본체로 중요시하는 성리학적 자연관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현상인 기(氣)가 본질인 이(理)보다 우선하는 현실주의적 가치관에 의한 기(氣)중심적인 이기론(理氣論)을 전개하였다.

성호는 삶을 중심으로 한 이기(理氣)와의 관계와 경학(經學)을 근거로 하여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를 재해석하였다. 성호의 인간관은 삶을 바탕으로 한 현실적 인간을 중시하여, 기혈적(氣血的) 존재로서의 육체적 인간을 강조하였다. 성호는 실존적 본성을 재발견하고 인간의 마음의 역할과 감정의 근원을 살펴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인간애의 실천을 위한 사회 개혁 사상을 주장하였다.

성호는 중국의 청대(淸代) 고증학과 서구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자구(字句)에 대한 교감·문자학과 음운학·훈고· 추론 고증의 방법에 의해, 경전을 연구하는 실용주의적 경학(經學)을 추구하였다. 성호는 현실생활을 도외시한 공허한 관념의 유희만을 즐기는 당시의 학문풍토를 비판하고, 하나의 경전이라도 능통하여 실생활에 유익하게 쓰일 수 있는 경세치용적(經世致用的)인 경학을 주장하였다.

성호는 선입견에 의하지 않고 실제의 사실에서 옳은 것을 추구하였는데, 학문에 있어서 실증적 사유는 천문·지리·역사· 제도 등의 각 분야에서 새로운 인식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 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한 서학(酉學)은 성호에게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는데, 세계관의 확대와 역사 의식의 심화, 전통적 중화관(中華觀)의 탈피라는 점 등에서 의미가 크다.

둘째, 민족의 주체성을 밝히다

성호는 ‘자아(自我)’의 자각을 통해 민족의 주체성을 밝히고자 하였다.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 중화주의를 배척하여, 중국이 유일한 천자(天子)의 나라가 될 수 없으며, 서양의 각국이 각기 군주가 있어 자기 역내(域內)를 통치하고 있으므로, 각 국가의 독립적인 주권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성호는 “하(夏 : 中華)를 귀하게 여기고 이(夷)를 천하게 보는 것은 옳지 않다.”“동국(東國)은 다름 아닌 동국일 뿐이다 (東國自東國), 우리 역사는 중국의 역사와 다르다.” 라고 주장하여 소중화(小中華) 의식에서 벗어나 민족적 자아를 발견하고,우리의 역사를 자주적으로 재인식, 새로운 역사적 안목을 지니게 되었다.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에 대한 인식도 전통적인 화이적 명분론이나 감정적 차원의 대응에서 벗어나, 세계 여러나라가 더불어 사는 상호간의 교린 (交隣) 체제의 강화를 주장하였다.

성호는 또한 올바른 역사 이해와 서술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객관적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한 두 가지 사서(史書)에 의존하지 말고, 여러 서적을 상호 비교해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료에 대한 문헌비판과 논리적 추론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도덕적 해석으로부터 독립시켜, 역사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인식방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성호는 우리 나라 역사에 계통을 세워 재구성하기 위해 삼한(三韓)에 정통을 두는 ‘삼한정통론’을 강조하였다.

단군이 처음 우리 나라를 일으켰고, 그 후 기자조선이 계승하여 남쪽으로 옮겨 마한(馬韓)이란 나라를 연장해 왔기 때문에, 우리 나라 역사의 정통은 단군조선→기자조선→마한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였다. 단군조선에서 비롯한 우리나라 역사 의 변천과정 속에 하나의 계통을 찾아내려는 성호는 한사군(漢四郡)의 설치로 역사가 중단된 듯이 여겨졌던 공백기간에, 마한으로 나라가 이어진 계통을 발견하고 그것을 정통으로 내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성호의 정통론은 중국사가와 같이 자기 소속 왕조에 대한 의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 파악에 있어 체계성을 위한 것이었고 한 걸음 나아가 중국의 정통사상 [천자사상]을 극복하게 되었다. 성호에서 비롯한 이 정통론은 안정복·정약용으로 계승 심화되었는데, 순암 안정복은 『동사강목』을 통해 역사를 보다 체계적으로 파악하였고, 다산 정약용에 와서는 현실론적 주장으로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절대성의 잔재가 일소되었으며, 나아가 현실성에 입각한 역사이해를 가능케 했다.

셋째, 서학을 합리적으로 수용하다

성호는 서양과학 중 특히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 인간을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는 한편, 실증적 방법론에 의한 경세치용적인 경학 연구로 사회전반의 개혁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성호는 우주의 운행질서와 태양·지구·달 등에 관해 기존의 동양 천문학에서 알지 못했던 여러 가지 과학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방대한 저서를 통해 소개했으며, 세계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성호는 경전해석에 있어 기존 학설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시도하여, 성리학과 예학을 현실적·체계적으로 정리, 그 대안을 제시하였고, 이를 통해 학자들로 하여금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을 직시케 했다.

성호는 덕치(德治)를 근본으로 하지만 현실적인 통치수단으로 법을 중요한 도구로 보았기 때문에, 엄격한 법의 시행과 형평에 맞는 판결과 집행, 연좌제 금지 등의 법률 적용 방법을 주장하였다.

성호는 국제외교에서도 실리적인 선택으로 사대주의를 주장하였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사대외교가 약자로서 생존할 수 있는 정책으로 인식, 도덕적 이상주의에 젖은 당시의 대외관을 비판하였다.

넷째, 사회개혁을 주장하다

성호는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당쟁의 페단을 지목하였는데, 당쟁은 서로의 ‘이해(利害)’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당쟁의 폐단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두 가지로 나눠 제시하였다.
첫째는 붕당의 근원이 과거제도에 있으므로, 인재등용의 방법을 고쳐 문벌이나 당색 중심의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생업을 천시하고 관직만을 통해 부귀영달을 꾀하는 양반들의 생리와 생활 태도를 바뀌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성호는 특히 과거제도의 폐단을 논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첫째, 과거만이 유일한 출세의 길이었기 때문에 과거시험 준비에 평생을 소모 하는 폐단이 있는데, 이를 추천제를 통해서 보완하고자 했다.
둘째, 시험과목이 너무 문예(文藝)에만 치중하여 실용성이 없는 폐단이 있는 것에 대해, 경학(經學)과 시무(時務)를 묻는 시험과목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셋째, 잦은 과거 시험 때문에 합격자가 너무 많아 붕당이 형성되는 폐단이 있으므로 과거시험을 줄여야한다고 하였다.

다섯째, 중농주의 사상을 세우다

성호는 농업을 기본산업으로 하여, 근검과 절약을 강조하는 절제를 바탕으로 상업을 억제하고 돈의 유통을 막고, 백성을 편안히 살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성호는 고향인 안산(安山)의 농촌에서 일생동안 농민들과 지내면서 농촌사회의 경제적 몰락을 실지로 체험하였다.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과 상업(商業)·고리대자본(高利貸資本)으로 비농민(非農民)의 농지 소유가 늘어나는 반면, 농민들이 토지로부터 이탈되자, 적은 농사를 짓는 농민을 구제하는 토지 제도로 한 가구당 오늘날의 1,500평에 해당하는 50묘 정도의 영업전(永業田)을 한정하여 기본적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균전론(均田論)’을 제시하였다.

성호는 가혹한 노비제와 서얼차별의 사회상을 비판하였다. 천인도 과거에 응시하게 하여, 다양한 인재를 등용시키고, 노비의 수를 줄여 양인(良人)이 늘어나면 국가의 조세와 부역 또한 많아져 국가의 재정이 확대될 수 있다고 하였다. 성호는 검소하고 간소한 생활의 예를 강조하여 사리의 분별과 겸손하고 근검 절약하는 예(禮)와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분수에 맞는 예식을 치르도록 주장하였다.

성호의 이러한 제도개혁안들은 이상론(理想論)이 아니라, 당시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대안 (代案)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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