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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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선생은... 온화하고 순수하며 화평하고 즐거운 듯 미소 띤 얼굴은 친근하여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고, 곧고 엄정한 말씨는 엄격하면서도 말은 기백이 놓고 간결하여 가을 햇살 같았다. -제자 윤동규

성호이익

성호학문의 계승과 발전

성호이익은 근기(近畿)의 한 남인 가문에서 태어나, 이곳 안산(安山)에서 일생을 살면서 재야학자로서 학문연구에 정진하였다. 그 결과 성리학.경학분야예서 큰 업적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시대현실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종 사회 제도의 병폐에 대해 개혁적 방안들을 개진함으로써, 실학(實學)의 새로운 학풍을 열어 나갔다.

그의 학문세계는 타락한 정치와 피폐해진 경제를 개혁하고 통치 체제를 개혁하려는 실천적 방안들이 제시된 경세치용학 (經世致用學) 바로 그것이었다.

성호는 위로 퇴계 이황(李況)을 학문의 종장(宗匠)으로 사숙(私淑)하였으며, 율곡 이이(李珥)와 반계 유형원 과 큰 댁 상숙인 태호 이원진의 학문에도 영향을 받았다. 특히 유형원은 성호에 앞서 실학적 사상을 개진한 인물로 성호와는 성이 다른 6촌의 친척 관계에 있었다. 성호는 반계의 사후에 그의 전과 문집 서문을 지어 두 집안의 세의를 보이고 있다. 성호는 또한 지봉유설을 남긴 이수광의 가문과도 혼인을 통한 세교가 있었다.

이상과 같은 성호학과 사상의 계승적 측면 외에도, 성호에 대한 정치적 사승은 오광운 · 강박 · 채제공 등으로 이어졌으며, 문학 방면에서의 사승은 성호의 조카였던 이용휴를 중심으로 안산 일대의 남인 · 소북계 문사들에 의해 이어졌다. 이용휴 · 유경종 · 강세황 · 조중보 · 허필 · 최인우 · 신광수 · 임희성 등 "안산15학사"는 대부분이 성호의 문하생들이었다. 또 안산에서 직접 수학하지는 않았으나 정조 연간에 활약한 대표적인 남인계 문인인 정범조 · 이헌경 등도 성호학파의 영향을 일정하게 받았다. 특히 혜환을 중심으로 하는 문인 그룹은 서울의 연암 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문인 그룹과 함꼐, 18세기의 가장 수준높은 문학적 성과를 드러내었다.

성호의 학문은 제자들 뿐 아니라 성호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학문적 · 문학적 교류가 있던 남인 소북계 인물들에게 우선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인물 몇몇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식(李拭).권두경(權斗經).김이만(金履萬).조수홍(趙守弘).이재(李裁).홍중하(洪重夏).권상일(權相一).홍중효(洪重孝)
이광정(李光庭).채팽윤(蔡彭胤).남하정(南夏正).남하행(南夏行).정상기(鄭尙驥).권이진(權以鎭)

성호의 문인들은 대체로 근기남인계의 문사들과 여주이씨 일문으로 경ㄴ학에서부터 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학문활동을 펼쳤는데, 모두 당대의 뛰어난 선학들이었다. 근기남인 학자들로는 윤동규 · 안정복 · 신후담 · 권철신 등이 있고, 이 학맥은 다산 정약용에게 이어졌다.

성호는 모든 학문분야를 설립하여 18세기 우리나라 사상계에 새로운 방향을 열고 실학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지만, 그의 학문과 사상은 보수와 진보의 양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문하에 안정복과 권철신으로 대표되는 두 갈래 경향을 낳게 되었다. 즉, 주자 성리학적 입장을 고수하며 경학 연구에 치중했던 안정복은 온건주의를 대표하는 우파로써, 이후 황이곤 황덕길 부자를 거쳐 성재 허전으로 그 학풍이 이어졌다.

반면 양명학 · 서학 · 천주교 등에 경도되어 반주자학적 성향을 보인 권철신은 급진주의를 대표하는 좌파로써 손암 정약전으로 이어지고 다산 정약용에 의해 집대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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