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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선생은... 온화하고 순수하며 화평하고 즐거운 듯 미소 띤 얼굴은 친근하여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고, 곧고 엄정한 말씨는 엄격하면서도 말은 기백이 놓고 간결하여 가을 햇살 같았다. -제자 윤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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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석 간찰
성호기념관 201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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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석 간찰
곽종석 간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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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종석 간찰 2점/郭鍾錫 簡札 2


Two pieces of letter written by Kwak Jong-seok


1883년, 1897년, 40×28cm, 52.5×24cm


 

곽종석(1846~1919)의 자는 명원(鳴遠), 호는 면우( 宇). 본관은 현풍(玄風)으로 경상도 단성(丹城) 출신이다. 조선말기의 유학자, 어려서부터 성리학 공부에 전념하여 20대 초반에 이미 학자로 명성을 떨쳤고, 25세 때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문하에 들어간 뒤로 학문이 더욱 심화되었다.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번번이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1903년 비서원승(秘書院丞)에 제수되었는데, 신기선(申箕善) 등 고관들의 수없는 간청에, 일단 상경하여 어전(御前) 독대(獨對)를 하며 의견을 상주하고 내려왔는데, 이 때 고종의 감복을 얻어 의정부 참찬에 임명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 137인의 파리장서에서 대표로 추대되었고, 이로 말미암아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의 학문은 주리설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지만, 또한 성리학에 머물지 않고 경학?지리?농업?산학(算學)?병법에도 다양한 관심을 가졌다. 문집 『면우집』(본집 63책 165권, 속집 13권, 연보 4권, 승교록 1권, 도합 183권)이 있다.


이 간찰의 앞에 것은 1883년 정월에 쓴 것으로, 무덤 쓸 산을 찾아다니느라 새해가 되도록 답신도 보내지 못했다 하고, 상대방의 어른의 병환에 대해 근심어린 얘기를 하고 있고, 뒤의 간찰은 1897년에 쓴 것으로 상대방의 부친이 건강하시다는 말을 듣고 이는 상대방의 효심의 결과라며 칭찬을 하고, 이어 자신이 지난 달에 아들을 보았다는 얘기를 쓰고 끝에 스승(한주 이진상을 말함)의 문집을 이미 간행했는데, 학설이 세상의 일반 설과는 달라 전국 사방에서 이견(異見)이 답지하고 있다는 것과, 교감도 정밀하지 못하여 문제가 많으니 내년을 기다려, 그대에게 보여드림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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