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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선생은... 온화하고 순수하며 화평하고 즐거운 듯 미소 띤 얼굴은 친근하여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고, 곧고 엄정한 말씨는 엄격하면서도 말은 기백이 놓고 간결하여 가을 햇살 같았다. -제자 윤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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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상 간찰
성호기념관 201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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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상 간찰
이진상 간찰

이진상 간찰/李震相 簡札/Letter written by Yi Jin-sang


1873년(고종 10), 62.5×23.5cm


 

이진상(1818~1886)의 자는 여뢰(汝雷), 호는 한주(寒洲) 본관은 성주(星州)로 성 주에서 출생하였다. 영남학파를 이은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의 조카로 어려서부터 학문에 두각을 보였다. 1849년 소과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대과는 포기하였다. 학문적 명성과 함께 시폐(時弊)를 비판하는 상소도 여러 차례 올리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67세에 나라에서 유일(遺逸)로 의금부도사를 제수하였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문집 『한주집』은 1895년·1902년 두 차례에 걸쳐 간행이 되었고, 문집 외에도 다수의 별저를 남겨, 이를 문집과 합치면 85책이나 되는 분량이다. 제자로 곽종석(郭鍾錫)·허유(許愈) 등이 있다.


이 간찰은 어느 고을 원에게 부친 것으로 서로 헤어진 지 3년이나 되어 우선 안부를 여쭙고 이어 자신의 근황을 얘기하고 있다. 올 봄 누이 동생이 죽고, 이 달 초에는 숙부(응와 이원조임)의 대상(大祥)을 마쳤으니, 이제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는데 자식은 서울로 떠나있고 새로 들어온 며느리는 귀근(歸覲)을 가서, 자신의 형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 상대방이 질문한 예의(禮疑)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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