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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선생은... 온화하고 순수하며 화평하고 즐거운 듯 미소 띤 얼굴은 친근하여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고, 곧고 엄정한 말씨는 엄격하면서도 말은 기백이 놓고 간결하여 가을 햇살 같았다. -제자 윤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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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 이익 가문의 거문고, 나라 문화재 됐다- 20140818 한겨레뉴스
성호기념관 201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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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성호 이익 가문의 거문고, 나라 문화재 됐다





등록 : 2014.08.18 10:29 수정 : 2014.08.18 10:34
















옥동금 앞면. 사진제공 문화재청



문화재청 18일 ‘옥동금’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

거문고와 흡사, 옛 악기 모습 보여주는 귀한 유물


조선후기 실학의 대가였던 성호 이익(1681~1763)의 집안에서 연주하던 옛 거문고 ‘옥동금(玉洞琴·경기도 안산 성호기념관 소장)’이 나라에서 지정하는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8일 옥동금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옥동금’은 이익의 셋째 형인 옥동 이서(1662~1723)가 만들어 연주했던 거문고로 전해진다. 제작 시기와 사용자가 분명해 18세기 초 우리 옛 악기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귀한 유물로 꼽힌다. ‘옥동금’의 유래에 대한 기록은 19세기 고종 때 홍문관교리와 우승지 등을 지낸 수당 이남규(1855~1907년)의 문집 <수당집> 권1 ‘군자금가(君子琴歌)’에 전한다. 문집을 보면, ‘옥동금’은 옥동 이서가 금강산 만폭동의 벼락 맞은 오동나무를 얻게 되자 거문고를 만들어, 뒤판에 시를 지어 새겼으며, 당시에는 이를 ‘군자금(君子琴)’이라 불렀다고 적었다.

 













옥동금 뒷면. 사진제공 문화재청



실제로 현재 전해지는 ‘옥동금’의 뒤판에는 소장자였던 옥동 이서의 친필을 집자(集字)한 ‘玉洞(옥동)’이라는 글자와 효언 윤두서(1668~1715)의 아들인 낙서 윤덕희(1685~1776)가 쓴 시가 새겨져 있어서 이 거문고의 역사적 품격을 드러내고 있다. 옥동금은 여주이씨 문중에 전해지다가 2011년 11월 12일 후손 이효성씨가 안산시에 기증했다. 현재 안산시 성호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제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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